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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쓸개도 떼주는 마음

by 주식이 주식되다 2024. 1. 1.

 

간기증시 쓸개는 1+1 증정

 

간과 쓸개는 전통적으로 떼어주어도 좋은 장기에 속하는 듯하다.

자주 인용되는 것이 어쩐지 늘 앙숙인 거북이를 따라 혈액형 일치유무도 모른채 용왕에게 도네이션을 할 뻔한 토끼가 나오는 동화에서 알 수 있고 서양에서는 프로메테우스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옛날 사람들이 이미 기증이 가능한 장기라는 암시를 후대에 주었다.그리고 간도 쓸개도 빼준다는 속담마저 있다.

 

루벤스, ‘쇠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구글 검색)

기증 동기는 불순하였다

의학적으로 그렇다고 쳐도 그렇다면 간도 쓸개도 떼주는 심리는 어떠하여야 하는가.

불순할 수록 이기적일 수록 좋다.

나의 드라마틱한 결심을 지인분들은 아이고 우리 효녀심청이라고까지 불러주었다.

물론 효심이나 가족애도 좋다.하지만 그런 의도는 기증 후의 나의 삶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못줄 수도 있다.

나이가 들어 아파질때도 혹시나 기증을 해서 그런가?또는 기증받은 사람이 서운하게 해도 간쓸개 다 떼줬는데 나한테 이래?하는 순간 당신은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그것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은 다 다를 수 있으니 적어도 나는 이랬다.

겨우 50대인 엄마가 간경화가 심해지고 간암이 되었다.간성혼수가 와서 태어나 처음으로 내 생일을 잊은 날을 나는 잊을 수 없다.그런 상황이 되도록 무심하고 무력한 나를 원망했다.그러다 간이식 수술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기증가능한 사람은 나 뿐이니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내게 어떻겠냐고 하지 않았고 내 입으로 하겠다고 먼저 말했다.

 

내가 효심이 깊어서가 아니었다.

만약 엄마가 수술을 받지 못해 잘못되면 평생 그 후회스러움을 어쩔 것이냐 나는 죽을때까지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한다.그리고 별로 성격이 맞지도 않는 아빠는 당시 미혼인 내가 아닌 아빠의 짝인 엄마가 같이 살게 해야 겠다는 아주 이기적인 계산의 결과였다.

효심이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내게 유리한 결정을 내가 내린 것이므로 나중에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일을 구실로 심리적 경제적 보상-아 이거 무슨 장기매매적 비윤리적 발상이냐 할지 모르지만 형제간에는 유산가지고도 척을 지는 세상인거 다 아시잖아요. 그런거죠-을 말로도 마음으로도 바라는 일은 없다고 먼저 결정했고 지금껏 지키고 있다.

 

다행히 엄마도 나도 무사히 퇴원했고 엄마는 놀랍도록 건강하게 잘 지내주고 있다.

내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고 고맙다고 했다.바라던 바였다.

아빠는 회복중인 나에게 왜 안한다고 한번도 말하지를 않았냐고 한마디를 했는데 그게 지금도 마음 아프다.

당시는 수술시간이 거의 스무시간 정도 걸린 듯한데 아내와 결혼을 앞 둔 딸을 수술실에 보내놓고 어떤 심정이었겠는가.심지어 그 때는 아빠도 간암이 발병했는데 식구들한테는 말하지 않았었다.

우리 식구가 그 때가 참 힘들 때였는데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세상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 엄마는 하루에 몇번이나 있는 약시간을 한번도 귀찮다 안하시고 명랑하게 병원도 잘 다녀오시고 건강하게 잘 늙어가고 있고 아빠도 간임이 전립선암.피부암으로 전이되면서도 다이어트와 고혈압을 걱정하시면서 잘? 지내고 계신다.

나는? 그렇게 건강하지는 못하다.당시 나의 간땡이는 크고 좋았으나 원래 그렇게 체력적으로 훌륭하지 못했고 갱년기에 접어드니 여기저기 안아픈데가 없다.하지만 딱히 간과 연관된 질병은 없다.오히려 이식수술을 계기로 술을 끊게 되지 않았더라면 멀쩡한 간도 홀짝홀짝거리다 망가뜨렸을지도 모른다.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15년전 한 번의 용기와 결정은 이미 심리적 손익분깃점을 지났다.이만하면 휼륭하다.이런 가성비를 본 적이 없다.

그 때 다른 선택을 하고 15년을 엄마를 그리워하고 지냈을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못견딜 것 같다.

하지만 운이 좋은 편일 수도 있다.적은 확률로 힘든 선택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선택은 기증자의 몫이다.내가 엄마와 입원중일때 기증문제로 가족간에 다투거나 기증자가 아니면 기증받는 쪽에서 기증을 거부하는 등 집마다 사람마다 다른 결정을 하였다.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사자가 아니라면 하는게 좋다고 설득하지 말았으면 하고 안해도 된다고 분명히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래야 당사자가 나중에 후회가 없다.

 

지금도 수술 흉터는 가렵다.요즘에 비하면 배 전체를 가로지르는 모양에 보기도 물론 안좋다.배를 까고 보이는 직업이라면 섹시한 장미문신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복부비만 갱년기라 흉터없어도 내놓을 형편도 못된다.

 

그래도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으며 내게 그런 기회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아무 일도 없었더라면 오히려 부모도 부족한 나에게 아쉬움이 있고 나도 부모에게 뭔가를 더 바라는 자식이었을지도 모른다.이미 한번 마음에서 죽는 연습들을 하였으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금세 돌아올 수도 있다.

 

혹시 지금 기증을 앞두고 마음이 복잡하신 분이 계시다면 오래된 리뷰이긴 하지만 참고가 되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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